서류 더미 앞에서 고민만 늘어갈 때
얼마 전 사무실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을 보는데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제조혁신바우처니 뭐니 해서 정부 지원 사업에 한번 도전해 보겠다고 호기롭게 달려든 게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홈페이지 들어가서 서류 몇 개 업로드하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막상 해보니까 보통 일이 아니더라. KOSME 쪽 사이트를 몇 번이나 들락날락거렸는지 모른다. 뭐 하나 보려고 하면 인증서 갱신해야 하고, 또 보안 프로그램 설치하라고 해서 몇 번을 껐다 켰는지. 컴퓨터가 아주 난장판이 됐다. 옆에서 보던 직원은 차라리 컨설팅 업체 끼고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는데, 그 비용도 꽤나 만만치 않아서 쉽게 결정을 못 내리겠더라. 500만 원은커녕 100만 원도 아쉬운 마당에 컨설팅 비용으로 돈을 쓴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ERP 도입이 정말 답일까 하는 의문
주변에서는 다들 중소기업 ERP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 같은 작은 규모에서 ERP라는 게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모르는 것 같다. 이번에 바우처 받아서 공정 자동화 좀 해보려고 견적을 뽑아봤는데, 솔직히 도입 비용만 1,500만 원 정도가 예상됐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금액이 있긴 하지만, 나머지 자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이 안 나온다. 사업소득세 계산기 돌려가며 매출 흐름 체크하는 것도 머리 아픈데, 여기에 인건비 상승분까지 얹으니 경영진 입장에서는 매일이 살얼음판이다. 누군가는 스마트 공장 가면 생산성이 몇 배 오른다고 하는데, 그 시스템 운용할 인력을 새로 뽑는 건 더 큰 문제 아닌가 싶다.
정부 사업 연계 컨설팅의 실체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컨설팅 광고에 눈이 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연락 오는 곳들은 하나같이 ‘정부 지원 사업 연계를 통한 자산 형성’이나 ‘법인 정비’를 강조한다. 그럴듯한 제목으로 미팅을 잡아주겠다고 하는데, 막상 만나보면 다들 비슷한 말만 반복한다. 법인 구조 조정해서 세금 아껴준다는 말, 누구나 다 아는 내용 아닌가. 비용은 또 적게는 2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 단위까지 부른다. 이런 비용을 쓰면서까지 지원금을 받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 돈 들여서 천천히 시설 투자하는 게 나은 건지 도저히 판단이 안 선다. 한진이나 네이버 같은 대기업에서 하는 지원 프로그램도 살펴봤지만, 그것도 결국 우리 같은 작은 업체가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화관법 대응하다가 지쳐버린 오후
얼마 전에는 화관법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화학물질 관리 규정이 자꾸 바뀌니 현장 점검 나올 때마다 긴장된다. 장비 하나 새로 들이는 것도 법적 검토가 필요하니, 지원 사업 신청은커녕 기존 사업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작년에는 지원 사업 선정된 업체들이 꽤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서류를 준비하고 시간 조율을 다 했을까. 나는 이번 주 내내 공공기관 사이트랑 씨름하다가 결국 신청 기한을 확인도 못 했다. 아마 이번 차수는 건너뛰어야 할 것 같다. 당장 이번 달 결제 대금 처리하는 게 급선무지, 보조금은 언감생심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
창업 처음 할 때 생각했던 모습이랑 지금은 너무 달라졌다. 그때는 물건만 잘 만들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 뭉치랑 전쟁 중이다. 누군가는 내게 스마트 제조 얼라이언스 같은 거 참여해서 정보 좀 얻으라고 하지만, 막상 그 현장에 가면 나 같은 사람들은 정보 얻으러 갔다가 주눅 들어서 돌아오기 일쑤다. 다들 이미 똑똑한 컨설턴트 한두 명씩 끼고 대화하는 분위기라 끼어들 틈도 없다. 내일은 다시 공장에 나가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나 들어야겠다. 이게 적성에 맞는 건지 가끔 회의감이 들지만, 그래도 뭐 별수 있나. 서류는 서류고, 내일은 내일이니까.

KOSME 사이트랑 씨름하다가 정말 지칠 것 같네요. 제 경우에도 처음 사업에 도전할 때 비슷한 경험을 해서 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느껴요.
화관법 때문에 계속 어려움을 겪으시는군요. 저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지금은 현장 상황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