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서류 뭉치를 들고 창구 앞에서 느꼈던 묘한 피로감

서류 더미 속에 파묻혀 보낸 지난주

정부보조금을 한번 받아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순전히 호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다들 한 번씩은 신청해본다는 이야기, 그리고 막연하게 ‘나라에서 지원해주면 사업하기 좀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 하나로 시작했는데, 막상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하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곧바로 깨달았다. 법인등기부등본은 기본이고, 고용보험 사업장 자격취득자 명부 같은 생소한 서류들을 하나하나 떼어내다 보니 내 회사가 대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숫자로 증명하는 게 이렇게까지 삭막한 작업이었나 싶었다. 사실 처음에는 신용평가서 발급받는 정도면 다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담당 창구에 물어보니 제출해야 할 증빙 자료가 끝도 없이 늘어났다. 국세, 지방세 납세증명서부터 임대차계약서까지, 캐비닛 깊숙이 처박아뒀던 서류들을 다 꺼내 보니 책상 위가 금세 난장판이 됐다. 세무사 상담을 받으러 가서도 괜히 주눅이 들었다. 비상장 기업이라 데이터가 부족해서 평가가 까다로울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게 아닌데 왜 이렇게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나 싶은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숫자로 내 회사를 설명한다는 것의 어려움

NBL이니 경영상태확인서니 하는 용어들이 쏟아질 때마다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잠시 잊기도 했다. 기업평가라는 게 단순히 매출이 얼마나 나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얼마나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는지를 따지는 거라는데, 초기 단계의 우리 같은 업체 입장에서는 그 ‘안정성’이라는 잣대가 참 가혹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누구는 요즘 삼성 주식 시세가 어떻다, 반도체 분야에 돈이 몰린다며 거창한 산업 분석을 늘어놓지만, 정작 내 사무실 한구석에서는 다음 달 임대료 걱정을 하고 있으니 그 괴리감이 꽤 컸다. 데이터를 판매해서 수익 모델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계획서와는 별개로, 당장 제출해야 할 서류들 속에서 내 사업이 가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서류를 떼러 간 주민센터에서 대기 번호표를 뽑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문득 이렇게 서류 한 장으로 평가받는 게 기업의 전부인가 싶어 허무하기도 했다.

기다림의 시간과 불확실한 결과

신청을 마치고 나니 이제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담당자가 말하기를, 평가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곳은 금방 결과가 나온다고 하던데, 사실 그 ‘금방’이라는 말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테니까. 내년 3월에 시행된다는 어떤 얼라이언스 소식을 뉴스에서 보며, 정부가 반도체나 AI 같은 큰 산업에는 수천억 단위로 투자한다고 해도 나 같은 사람에겐 이런 사소한 서류 한 장 통과하는 게 더 큰 과제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사실 경영상태확인서라는 게 뭐라고, 이걸 뽑기 위해 며칠을 끙끙댔나 싶다. 30만 원 정도 되는 수수료를 내면서도 이게 정말 보조금으로 돌아올지, 아니면 그냥 서류 처리 비용으로 공중에 날아가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세무사 사무실에서의 짧은 조언

지나가듯 들렀던 세무사 사무실에서는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만 다 챙기라고 했다. 그게 제일 빠르다고.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찜찜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다. 정형화된 틀에 내 사업을 끼워 맞추는 기분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내일 또 전화해서 서류 누락된 건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보조금을 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서류 통과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것 같은 이 상황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안하다. 남들은 다들 잘만 받아서 사업한다던데, 왜 나만 이렇게 서류 더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일까. 뭐,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저질러놓은 일이고, 서류들은 다 제출했고, 이제는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만약 안 된다고 해도 다시 처음부터 준비할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냥 내 자본으로만 운영하는 게 더 마음 편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서류 뭉치를 들고 창구 앞에서 느꼈던 묘한 피로감”에 대한 2개의 생각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