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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C 장비 빌리려다 서류 뭉치에 파묻혔던 지난달

서류가 사람을 잡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지난달 초였나, 갑자기 공장에 들일 CNC 장비 견적을 보다가 덜컥 겁이 났다. 대충 4천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부대 비용까지 따져보니 통장 잔고로는 택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정부 지원 사업을 찾아보는 거였는데, 이게 생각보다 사람을 아주 지치게 만들더라. 처음에는 그냥 ‘제조업 지원사업’이라고 검색창에 치면 바로 내가 필요한 자금이 툭 튀어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뭐만 하려고 하면 사업계획서를 몇 장씩 써야 하고, 그놈의 신용보증기금이나 IBK기업은행 같은 1금융권 신용대출 창구에 가려면 서류 준비하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등기부등본은 물론이고 부가세 과세표준 증명원까지, 내가 사업을 하는 건지 서류 발급 기계를 운영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1금융권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고 서늘했다

지점 창구에 앉아 대출 상담을 받을 때 담당자가 건넨 말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 사업 모델이 나름대로 탄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 눈에는 그냥 ‘리스크가 있는 소상공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특히 요즘 같은 고물가, 고유가 시대에는 제조업체들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는데, 그게 꼭 나 들으라는 소리 같아서 기분이 참 묘했다. 소상공인 특별자금이나 신보 대출을 문의해도 돌아오는 건 대개 ‘한도 확인이 필요하다’거나 ‘지금은 시기가 좀 어렵다’는 원론적인 답변뿐이었다. 2.5%에서 3%대 금리를 기대하고 갔는데, 실제 상담 과정에서 들은 이율은 생각보다 높아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차라리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로컬크리에이터 지원사업 같은 게 더 나을까 싶어 사이트를 들락거렸지만, 그것도 결국 공모전 수준의 치열함을 뚫어야 하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버섯 스마트팜이나 할 걸 그랬나 싶은 엉뚱한 생각

가끔 밤에 혼자 공장에 남아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차라리 제조업 말고 요새 정부에서 밀어준다는 스마트팜 같은 걸 했으면 지원받기가 더 수월했을까? 얼마 전에 본 뉴스에서는 AI랑 접목해서 스마트팜이나 버섯 재배 같은 걸 하면 지원금이 비교적 잘 나온다던데, CNC 돌리는 쇳가루 마시는 내 처지랑은 거리가 좀 멀어 보였다. 기술 전시회니 뭐니 해서 거창하게 대만이나 인도까지 나가서 글로벌 공급망을 타겟팅한다는 기사들을 보고 있으면, 나처럼 당장 이번 달 결제 대금이랑 기계 할부금 걱정하는 사람이 과연 저런 큰 판에 낄 수 있긴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지원 대상의 경계선에 딱 걸쳐 있는 기분이다. 아주 영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규모 방산 수출하는 기업도 아닌 애매한 위치. 그런 회사가 제일 끼어들 틈이 없는 게 지금의 정부지원사업 생태계인가 싶기도 하다.

결국은 내가 다 짊어져야 하는 몫인가

결국 대출은 승인이 났지만, 생각보다 적은 금액이 들어왔다. 장비는 새로 들여야겠고, 돈은 부족하니 예전보다 더 빡빡하게 일정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공장 운영 시간을 한 시간 더 늘리고, 전기세라도 아껴보려고 밤에는 형광등도 다 끄고 작업한다. 이게 맞나 싶다. 예산이 확대되면 소상공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뉴스를 보긴 봤는데, 그 혜택이라는 게 내 통장에 꽂히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건지. 처음에는 ‘정부 지원 받아서 사업 확장해야지!’ 하는 부푼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다음 달 이자 밀리지 않고 내는 게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지원사업이라는 게 당장 눈앞의 불을 끄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운 좋게 그 시기에 맞는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돌아가는 운명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렇게 발품 팔아가며 상담받으러 다녔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또 다르게 생각하면 안 했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싶기도 하고.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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