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로 눌러본 대출 버튼의 무게감
며칠 전 새벽에 잠이 안 와서 멍하니 휴대폰을 보다가 우연히 예전에 가입해둔 은행 앱에 들어갔다. 별생각 없이 대출 한도 조회 버튼을 눌렀는데, 생각보다 높은 금액이 찍혀 있어서 조금 놀랐다. 예전에는 은행 창구에 직접 가서 번호표 뽑고 서류 잔뜩 들고 상담받아야 겨우 가능한 일이었는데, 요즘은 그냥 화면 몇 번 터치하면 500만 원 정도는 순식간에 입금되는 세상이 됐다. 사실 그때 딱히 돈이 급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내 신용 점수가 어느 정도인지, 지금 내 상황에서 은행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런데 막상 ‘대출 실행’이라는 버튼이 눈앞에 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게 정말 내 돈이 맞는 건가 싶고, 이걸 클릭하는 순간부터 매달 꼬박꼬박 이자가 빠져나갈 생각을 하니 손가락이 쉽게 움직이지 않더라.
상호금융과 저축은행 사이에서 고민했던 날들
사실 돈 문제로 고민했던 건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사업자 대출 한도를 알아본답시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는데, 시중은행은 역시나 문턱이 높았다. 그때 지인이 무입고 차량 대출이나 무설정 하우스론 같은 걸 알아보라고 권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무서운 단어들만 가득했다. 개인 사채까지는 아니어도 저축은행권의 금리가 꽤 높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당시 79개 저축은행의 소액 신용대출 잔액이 1조 3천억 원이 넘었다는 뉴스를 보고 묘한 동질감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모두가 비슷하게 버티고 있는 걸까. 저축은행 대출을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무리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설프게 빚을 내서 사업을 유지하는 것보다 차라리 당장의 현금 흐름을 줄이는 게 정신 건강에는 훨씬 나았으니까.
연금 생활자를 위한 상품들을 보며 든 생각
최근에는 하나은행 같은 시중은행에서도 공적연금 수령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소액대출 상품을 내놓는다는 기사를 봤다. 연 1%대 고정금리라니, 예전의 나 같은 사람에겐 꿈같은 이야기다. 결국 금융이라는 게 누구에게는 절실한 생명줄이고, 또 누구에게는 그저 편리한 도구인 셈이다. 나는 20대 때 소액 대출의 유혹을 참지 못해 고생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앱에서 ‘대출 가능’이라는 문구만 보면 가슴이 철렁한다. 그게 얼마나 독이 될 수 있는지 직접 겪어봐서 더 그런 것 같다. 대리기사를 하시는 지인분이 갑자기 급전이 필요해 200만 원을 빌리려다 꽤 높은 이자를 부담하게 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랬다. 왜 금융은 항상 돈이 가장 급할 때 가장 비싼 값을 요구하는 건지, 그런 씁쓸함이 늘 남는다.
정리되지 않은 채무와 기록의 딜레마
가끔은 내가 빌린 돈의 전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것조차 버겁다. 대출 내역 조회를 할 때마다 늘어난 잔액을 보는 건 일종의 고문과 같다. 최근 한정승인 관련 법률 게시판을 보다가 휴대폰 요금 같은 사소한 채무조차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글을 읽었다. 꼴랑 몇만 원 때문에 경정 신청을 하고 비용을 쓰는 게 맞나 싶지만, 법 앞에서는 금액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참 야속하다. 나도 나중에 자산 정리를 해야 할 날이 올 텐데, 그때 내 금융 기록이 이렇게 흩어져 있으면 어떡하나 싶어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금융에 대한 불신
결국 그날 밤, 나는 대출 실행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가계부를 펴고 적어둔 메모를 다시 봤다. ‘조급해하지 말자’라고 적어둔 낙서가 보였다. 사실 돈이라는 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지는 것 같은데 왜 자꾸 빚을 내서 시간을 앞당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500만 원이라는 돈이 내 일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어쩌면 그건 잠시의 편안함일 뿐, 결국 나중에 더 큰 불안으로 돌아올 거란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앱 기반의 편리한 금융 서비스들은 더 쏟아져 나오겠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휴대폰 안의 숫자들이 무섭다. 이게 정말 편리함일까, 아니면 그냥 더 세련된 방식의 늪일까.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은 오늘 하루도 빚 없이 버텨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