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접해본 중진공의 서류 무게
사업자를 내고 몇 년 버티다 보니 통장에 찍히는 돈과 나가는 돈의 속도가 참 안 맞는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다들 대출 알아보러 중진공, 즉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야기를 하길래 막연하게 ‘나라에서 저리로 빌려주니 좋겠지’라고만 생각했다. 직접 들어가서 자금조달계획서 양식을 마주한 순간, 이게 그냥 단순히 돈을 빌리는 과정이 아니라 거의 기업 전체의 건강검진을 다시 받는 수준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무실 한구석에 쌓아둔 작년 매출 서류와 부가세 증명원들을 다시 꺼내는데, 이게 도대체 왜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단순히 2~3%대 저금리라는 단어만 보고 달려들었는데, 그 뒤에 숨겨진 행정 절차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류 준비의 늪
특허가 있으면 조금 유리하다길래 사무실 서랍 깊숙이 넣어뒀던 특허증까지 다 챙겼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기술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려면 단순 서류 외에도 실제 현장을 확인해야 한다며 담당자가 몇 번이고 전화를 했다. 사실 사무실은 15평 남짓한 공간이라 특별히 보여줄 생산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운영자금의 적정성’을 따져 묻는 통에 식은땀이 났다. 대출이라는 게 그냥 은행에서 신용보고 찍어주는 건 줄 알았는데, 중진공의 소상공인 특화자금은 내가 왜 이 돈이 필요한지, 이 돈을 쓰고 나서 매출이 어떻게 뛸 건지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내라고 했다. 새벽까지 엑셀 파일을 만지작거리면서 ‘내가 장사를 하러 나온 거지, 서류 작업을 하러 나온 건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찾아간 그곳의 풍경
상담 예약 날짜를 잡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오전 9시에 맞춰서 사이트 새로고침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어렵게 예약하고 찾아간 중진공 지역 지부는 왠지 모르게 공기가 차갑고 조용했다. 나 말고도 잔뜩 긴장한 표정의 사장님들이 대기실에 가득했다. 옆에 앉은 분은 서류를 3단 파일에 꼼꼼하게 정리해오셨던데, 나는 클립으로 대충 집어간 터라 괜히 더 쪼그라들었다. 상담하시는 분은 친절하셨지만, 내가 가져온 계획서의 빈틈을 하나하나 지적할 때는 정말이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 부분은 증빙이 좀 부족한데요’, ‘매출 성장이 완만한데 이 자금을 받으면 어떤 식으로 극복하실 건가요?’ 이런 질문들이 쏟아질 때마다 내가 쓴 글자들이 다 가짜처럼 느껴졌다.
KB국민은행에서 듣게 된 또 다른 이야기
중진공에서 상담받고 나오는 길에 근처 은행에 들러 이것저것 물어봤다. 요즘은 KB국민은행 같은 곳에서도 중진공이랑 연계해서 정책자금 이용기업 우대 프로그램 같은 걸 운영한다고 하더라. 중진공만 바라볼 게 아니라 은행 창구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알아보는 게 훨씬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은행은 중진공보다 조금 더 깐깐하게 신용도를 따지긴 하지만, 그래도 정부 지원 정책이 이렇게 여러 갈래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발품을 팔면 팔수록 내가 몰랐던 자금줄이 어디에나 있었다. 다만 그걸 다 챙겨 먹는 게 내 능력 밖의 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자금 조달의 고민
결국 서류를 보완해서 제출하고 나왔지만, 입금이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실제로 내가 원했던 금액이 다 나올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주변에서는 탄소중립이니 기후테크니 하면서 거창한 지원사업도 많다는데, 당장 눈앞의 직원 월급과 원자재 비용을 메워야 하는 작은 법인 입장에서는 그런 거창한 단어들이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중진공에서 7년 연속 ‘탁월’ 등급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들의 행정이 탁월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신청 과정은 ‘탁월’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나중에 정말로 자금이 승인되어 통장에 찍히고 나면, 이 고생을 잊을 수 있을까. 지금은 그저 며칠 뒤에 올 추가 서류 보완 연락이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